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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산책
최근에 광화문 앞 월대가 복원되었다('23.10월) 간신히 광화문 앞 도로의 안쪽에 자리잡게된 이 월대를 보며 반가운 마음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전부터 마음이 가는 것은 그 양 옆에 재배치된 해치상(해태)이다. 경복궁에서 백년이상 온전히 보존된 것이 생각보다 그렇게 많지 않은데(동십자각, 경회루, 근정전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 지금의 월대처럼 다시 만든 것이다), 이 해치상이 바로 백년이상 변하지 않은 것 중에 하나다. 경복궁 중건(1867년)즈음 제작되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1870년 고종실록에 해치상을 세워 하마비-말에서 내리는 지표석-로 삼았다는 기록이 등장하며, 구한말 사진 속의 해치상 상태에 손상이 거의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 더 이전에 제작된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 이 변하지 않음은 사..
서울은 정말로 격동의 도시다. 1945년 광복과 더불어 떠나간 일제의 자리를 대신해 행정이 이루어지다가 한국전쟁으로 도시 전체가 초토화되다시피하다가는 현재 2023년 서울은 불과 70여년만에 전세계에서 10위 안에 드는 거대 도시권을 이루었다. 수도권을 포함하면 이정도의 경제력과 규모를 보여주는 도시는 흔치 않다. 정말로 놀라운 역사를 지닌 곳이다. 그러나 서울에서 오래 살았지만, 그 역사에 대해서는 무지한 상태로 살아온 나로서는 온통 이 도시에 대해 모르는게 많다. 그리고 그 사실을 이 책들을 통해서 깨달았다. https://www.aladin.co.kr/m/mproduct.aspx?ItemId=48831499 바로 손정목 교수의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라는 책이다. 이 책은 서울이 해방이후 자리잡기 ..
William F. Sands(미국인, 1874∼1946)는 20대 중반 시절을 조선의 외교 고문(1900~1905)으로 지냈다. 그도 다른 미국계 외교관들과 마찬가지로 일본에서의 경험을 시작으로 조선에 들어왔으며, 미국공사관 업무(1등 서기관)를 시작으로 해서 조선의 외교 고문이 되었고, 앞서의 묄렌도르프나 대니, 샐르 레장드르나 그레이트 하우스 등을 이어서 그 역할을 수행했다. 그리고 조선에서의 생활과 그 경험담을 책으로 남겼다.(조선의 마지막 날, 원제:Undiplomatic Memories, 1930 - 불행히도 번역본은 절판되어 중고로만 구할 수 있다)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94313278 조선의 마지막 날 조선의 마지막 날..
윤치호(1865~1945) 선생은 17세에, 조선에 보낸 일본 수신사 일행에 합류하면서, 당대 개화파 거목들(김옥균 등)과 함께 일본에서 생활하며 당대의 유명인들과 함께하며 그 당시 가장 유명한 역사들과 함께하게 되었다. 기록에는 비상한 기억력과 재능으로 학생시절부터 인정받았으며 아버지 윤웅렬의 부탁으로 수신사 일행이 될 수 있었다고 한다. 이후로는 일본에 지내면서 공부하고, 그와함께 5개월간 배운 영어로 귀국 후 조선주재 미국 푸트 공사의 통역관으로 일하면서 고종/명성황후와의 알현은 물론이고 각국 공사와 개화파 주요 요인(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등) 및 민씨 일가 등 모두와 교류하게 된다. 내가 인지하는 구한말의 주요 인물 중에 그가 만나지 않은 이가 없으며, 심지어는 이노우에 카오루나 일본 근대화의..
퍼시벌 로웰(Percival Lawrence Lowell, 1855~1916)은 우리 구한말 궁내 고위 인사들과 짧은 기간이지만 다양하게 교류한 미국의 사업가이자 작가, 수학자, 천문학자이다. 아직 조선이 미국에 거의 알려져있지 않던 시기인 1883년 전후의 일이다. 또한 흥미롭게도 로웰은 수학사나 천문학사에도 등장하는 유명인사이다. 말년에는 천문대를 만들어 화성을 연구한 것으로 특히 유명했다. 부유한 보스턴의 로웰 가문 출신이며, 미국 상류사회의 일원이었다. 본인이 하버드 대학을 졸업했으며 형은 하버드 대학의 총장이 된다. 다만, 그는 1880년대에 극동에 흥미를 느껴 일본에 머무르던 차에, 조선 미국공사의 제안으로 보빙사 일행의 미국 안내를 맡은 것이다. 개인 카메라 장비를 갖고 있었고 사진에 능했으..
이 책은 극동을 두루 여행한 영국인 탐험가 비숍 여사의 조선에 대한 자세한 기록에 대한 책(1897년)이다. 타 선교사나 외국인들에 비해 조선을 다양하게 방문하고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다소간의 정확성에 대한 논쟁이 있으나, 몇년간의 방문을 타 외국인에 비하여 전문적으로 기록한 부분이 인상적이다. 여러 나라를 여행하는 기록을 출판했던 그녀는 63세의 나이에 1894년 2월부터 1897년까지 약 2년간 조선을 약 4차례에 걸쳐 장기 체류하면서 이 기록을 남겼다. 기록상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동학농민운동 시기와 청일 전쟁, 왕실부부 알현, 을미 사변을 다룬 17장, 21장, 22장이다. 언더우드 박사의 부인이나 러시아 공사 베베르와 그 부인, 영국 공사 일행 등 과도 해당 기간 교류하면서 조선의 정황을 ..
안국역에 바로 붙어있는 운현궁은 생각보다 다양한 이야기를 갖은 곳이다. 91년에 왕손으로부터 서울시가 구매하여 보수 공수를 했고, 지금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1800년대에도 흥선대원군이 집권하기 시작하면서 궁의 별채의 느낌으로 지속 중건되었고, 창덕궁과 바로 왕래할 수 있도록 당시에는 여러가지 문이 가까이 연결되어 있었다고 한다. 초기에는 노락당이라고 안채가 중심이었으나, 1866년 고종과 명성황후 혼례 이후로 노안당이 증축되어 흥선대원군이 정치를 주도하는 장소가 되었다고 한다(이를 테면 회의를 할 수 있는 넓은 장소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