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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치호 일기, 구한말 엘리트 젊은이의 조선 조정과 외교관들과의 기록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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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치호 일기, 구한말 엘리트 젊은이의 조선 조정과 외교관들과의 기록

작동미학 2023. 8. 11. 01:19

 윤치호(1865~1945) 선생은 17세에, 조선에 보낸 일본 수신사 일행에 합류하면서, 당대 개화파 거목들(김옥균 등)과 함께 일본에서 생활하며 당대의 유명인들과 함께하며 그 당시 가장 유명한 역사들과 함께하게 되었다. 기록에는 비상한 기억력과 재능으로 학생시절부터 인정받았으며 아버지 윤웅렬의 부탁으로 수신사 일행이 될 수 있었다고 한다.

 

 이후로는 일본에 지내면서 공부하고, 그와함께 5개월간 배운 영어로 귀국 후 조선주재 미국 푸트 공사의 통역관으로 일하면서 고종/명성황후와의 알현은 물론이고 각국 공사와 개화파 주요 요인(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등) 및 민씨 일가 등 모두와 교류하게 된다. 내가 인지하는 구한말의 주요 인물 중에 그가 만나지 않은 이가 없으며, 심지어는 이노우에 카오루나 일본 근대화의 아버지로 불리는 후쿠자와 유키치와도 수신사 시절 종종 만났다(이노우에 카오루를 싫어하기도 했다.). 그밖에 조선에 상주했던 묄렌도르프, 러시아 공사 베베르는 말할것도 없고, 그 시절 선교사인 언더우드 박사나 헐버트 박사도 포함된다. 또한 조선인 중 유래없이 상하이, 미국 등지에서 유학함으로써 말그대로 당시 매우 드문 글로벌 인재였다. 그렇게 성장하다보니 외교쪽의 다양한 분야에서 역할을 맡기지 않을 수 없는 환경에 놓이며 젊은 시절을 보냈다.

 

 특히나 미국 유학 시기(갑신정변 후 도피성으로 상하이로 갔다가 알렌의 소개로 미국 유학길에 오른다)에 기독교를 받아들이면서 조선내 선교사들과도 매우 친했다. 그의 장남의 영어 이름이 Allen인데, 선교사이자 미국공사였던, 앞서 소개한, 호레이스 알렌의 이름을 따른 것이 아닌가 싶다. 서간집에는 상당기간 Allen과의 편지 교류가 나오며 실제로도 일기에 매우 친밀한 관계로도 나온다. 만날때마다 언제나 포옹하는 사이다!

 

 그렇게 다양한 인물들과 교류했던 그가 19세 1883년 일본 수신사 시절부터 거의 평생 써서 남긴 일기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 일기에는 위 수많은 인물들에 대한 평가와 대화가 적혀있다. 국내에는 번역본이 출간되었는데(처음에는 한문으로 쓰다가 나중에는 대부분 영어로 작성했다고 한다. 일부는 유실되었으나 1883년부터 1905년경까지, 1911년부터 1945년정도까지의 기록이 남아있다고 한다.) 이중에서 필자가 읽은 것은 1883~1889년, 1896년, 1916~1943년 일기와 서한집이다. 불행히도 서한집에는 특정 인물과의 서신 빈도수 정도만(알렌과는 꽤 자주 편지를 주고 받았다) 유의미했고, 의미있는 정보가 많지는 않았다.

 

 그 중에 필자에게 감회가 큰 것은 1883~1885년 갑신정변 직후까지와 1896년 일기다. 

 

국역 윤치호 일기 1, 1883년~1889년
1896년 일기
윤치호 일기, 1916년~1943년 일기

 국역 윤치호 일기 1에서는 낡고 횡포를 부리는 청으로의 독립의 열기에 가득한 어린 청년 윤치호와 개화파의 모습이 나온다. 당대 김옥균 등 개화파들의 여러가지 생각이나 고민을 그대로 직접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수신사 일행으로써 일본에게는, 청으로부터 독립하여 예의를 지키는 신흥 강국 일본과 교류하는게 좋다는 다양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민씨 일가와는 일기 자체에서는 지속 불편한 감정을 고백하고 있지만 신기하게도 관계는 지속 유지하며 교류한다. 심지어 틈나는대로 만난다. 아마도 고종과 명성황후에 대한 충성은 지속 이어갔기 때문에, 개화파 갑신정변의 동조 인물로 충분히 의심받는 상황에서도 그 처벌을 피해간 것이 아닌가 싶다. 일기에서도 여러번 어리다고 무시당하는 일화가 등장하지만, 명석하고 늘 솔직하고 날카로운 이야기를 하면서 왕실에 대한 충성을 지속적으로 보여주었으므로, 아버지 윤웅렬을 통해서도 그러했지만,  왕실의 관계자로부터 지속 보호받을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그시기의 수많은 이들이 마치 명성황후와 대원군 처럼 서로 적으로 삼고 모함하던 시기에도 지속 조선 왕실의 관직을 수행하며 결과적으로 많은  혜택을 받았다. 그들은 늘 동지와 적을 가르며 살아갔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온갖 모략과 험담이 판을 치는 시기다.

 

 대표적인 사례를 을미사변 직후에 러시아 황제 대관식에 민영환과 동행하여 간 일에서도 찾을 수 있다. 갑신정변 전후에는 조선내 미국공사에서 기거하다시피하면서 푸트공사의 다양한 입장에 대해 자주 고종과 명성황후를 알현하면서 전달하고 중재하고 통역했다. 당시 조선 왕실이 미국 푸트 공사에 의지하는 것이 대단했기 때문에(국제 조약 전문가로서, 묄렌도르프를 견제할 수 있는 사람으로써 등) 그 의견이 중요했고, 따라서 그렇게 자주 고종을 알현하는 사람도 당시 민씨 척족외에는 드물었을 것이다. 명성황후가 윤치호의 첩에 대한 내용을 알고 묻고 확인하는 정도였으니 그 친밀함이 대단했다고 볼 수 있다. 예상컨데 한일강제병합 이후에도 과거 일본 고위직과의 관계나 다양한 국제 인물들과의 관계때문에, 일본도 그를 함부로 대하지 못했지 않았을까 생각해볼 수 있다. 심지어 윤치호는 1896년에 러시아 대관식에서 이홍장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그에 대해서는 과거의 영광만 남은 빈껍데기뿐인 인물이라는 평가가 책에 실려있다.

 

 전체적으로는 알렌의 책을 읽는 느낌과 비슷한 것은 놀랍다. 엘리트 청년의 자부심과 냉소가 가득있어서 어지간한 인물들은 모두 비꼬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민영환이나 민영익은 까다롭고 자기 마음대로이며 별 경제관념도 없는 귀족 선비로 적혀있다. 아관파천을 주도한 이범진에 대해서도 좋지 않은 말이 가득하다. 유길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윤치호는 심지어 유길준을 친일파이며 명성황후 살해의 배후로 의심하기도 한다.

 

 기타 재미있는 일화도 많은데 아관파천 이후 고종의 신임을 듬뿍 받은 이범진이 왕에게 미움을 받는 일이 벌어지는데, 고종에게 점쟁이 등 미신을 멀리하라는 직언한 직후이다. 이범진이 그 이후 윤치호에게 눈물을 흘리면서 "왕비 생전에는 그러한 제사나 굿이 왕비(명성황후) 때문인줄 알았는데, 사실은 명성황후가 고종을 기쁘게 하기 위해 그런것이었다"면서 한탄하는 장면에 대한 기록이 있다. (사실은 이범진은 헤이그 밀사 이위종의 아버지이며, 외교권 박탈 이후에도 끝까지 러시아 공사로서 버티다가 결국에는 나중에 나라를 잃은 슬픔으로 유서를 남기고 자결한다. 대표적인 고종의 측근이며, 미국주재 조선공사를 지닌 외교통이고, 그야말로 조선 왕실에 대한 충성파이다. 그런 이범진이 윤치호의 일기에서는 한없이 기회주의자에 욕먹는 인물로 묘사된다.)

 

 명성황후에 대해서는 몇가지 나라를 잘 이끌었는가에 의구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좋게 평가하고 있다. 엘리트였던 그가 인정한 조선왕실의 몇 안되는 인물이었다. 민씨 일가 중에서는 가장 높게 평가받았으며 어지간한 일에는 눈도 꿈쩍 안할것 같은 여러가지 글에 나타난 성격에도 불구하고 을미사변 이후에는 매우 아쉬워했다. 베베르에 대해서는 답답하고 변덕가득한 조선 정부 인물들을 처리하는 난감한 일을 하는 인물로 묘사하고 있다. 특히나 러시아 황제 대관식 참석을 하지 않겠다고 우기는 민영환을 설득하는 모습에 대한 묘사나, 여러가지 면에서 조선을 챙기는 인물로 나온다.

 

 윤치호는 전반적으로 초기 수신사 시절 외에는 일본에 대해서 적대감을 갖게 된다. 결국 일본도 조선을 넘보고 있다는 사실을 지각한 후에는 수신사 시절의 청에 대한 반감으로 갖던 호감을 접게 된다. 그리고 미국을 동경하다가 몇가지 인종 차별 등에 대해서 실망한 후 매우 현실적인 시각을 갖게 된 것으로 나온다. 그가 3.1 운동을 반대한 것 등도 아마 이러한 국제 현실을 깨달은 것에서 온다고 볼 수도 있겠다. 힘의 논리하에서 괜한 희생만 가져온다는 지극히 현실위주의 판단을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영향을 받은 3.1운동에 대해서도 누구도 관심갖지 않을 쓸데없는 일이라며 애꿎은 희생만 불러온다고 반대한다.(이후 추가적인 여러가지 행보와 다양한 이유로 그는 친일변절자로 평가받는 부분이 있다.)

 

 고종에 대해서는 별로 평가가 좋지 못하다. 왕실에 대한 관계나 충성은 변하지 않았지만 자주 고종이 무언가 숨기고 애매하게 판단하고 정사보다는 다른 것에 관심갖으며 지낸다고 평가하는 장면이 1896년의 일기에 등장한다. 이따금 고종에 대해서 비꼬면서 말한다. "상감께서는 원래 그러신다." 같은 넋두리다.

 

 일본에 체류하고 후일 미국에 건너가 방탕한 생활을 했다고 알려진 의친왕(이화공, 고종의 둘째아들, 1877~1955)을 일본에서 만나는 장면이나, 챙기는 장면도 재미있다. 그의 사촌 윤치오가 의친왕을 일본에서 보필하였기 때문에 그 소식을 계속 전해들었던 것으로 나온다. 가족들을 통해서 친구와 지인들을 통해서 조선 왕실을 둘러싼 여러 정황에 대한 정보를 수시로 접했던 것이다.

 

 당시 시대의 여러가지 실제 목격담이 궁금한 사람이라면 그래서 이 책이 매력적이지 않을 수 없다. 당대 모든 유명 인사들에 대한 만남과 대화, 평가가 나오므로, 그것이 개인적으로 편협하다고 하더라도 구체적인 일화로서의 재미는 준다. 더군다나 정확한 날짜와 정황과 함께 제공되는데, 1883년 겨울에 조선왕실을 방문한 퍼시발 로웰의 도착이나 만남, 어진사진을 찍을때 통역한 것등 그의 저작과 정확히 일치된 동일 기록을 찾을 때면 재미가 없을 수 없다. 각 선교사와 기록이나 외교관의 기록에서 그의 이름과 연관된 사건을 찾아 비교하는 즐거움이 있겠다. 박정양의 미행일기를 읽고나서 알렌의 일기를 읽었을때의 다양한 비교가 기가막히듯이, 윤치호의 일기는 그 주변 상황의 광범위한 기록들과 같이 비교해서 읽는 재미가 있다. 

 

 소개한 윤치호의 일기 연관 책은 절판된 것이 많은데, 중고서적 등으로 구매해 읽을 수 있다. 앞서 추천했듯이 1883~1885년, 1896년의 일기를 우선 권유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시대 모든 유명인을 그의 눈을 통해서 만날 수 있다. 다양한 나라에 머문 그를 통해 그 시대 각국의 모습과 인물들을 만나는 재미도 있다. 아직 번역서가 없어보이는 1886년부터 1895년의 일기가 궁금해지는데 따로 구할 수가 없어서 아쉽다. 특히 그의 귀국 직후 벌어졌던 을미사변 전후 기록이 너무나 궁금하다.

 

 그리고 새삼 알게된 것은 김옥균과 고종, 명성황후의 나이다. 김옥균은 1851년생, 명성황후도 마찬가지다. 고종은 1952년생이다. 그들은 거의 동갑내기였던 것. 1884년 갑신정변때 김옥균이 34세였던 것이고 왕과 왕비도 마찬가지였다. 박영효가 1861년생으로 24세, 서재필이 1864년생으로 21세였다. 서광범이 1859년생으로 26세, 윤치호가 20세였다. 어찌보면 개화파가 이리 젊은이들이었던 것은 장기간 일본 수신사로 머물며 배워올 수 있는 젊은 엘리트들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30대 초반이었던 고종과 명성황후는 윤치호를 자주 만나며 외국 공사들과 소통했고, 김옥균과도 친하게 지냈다는 것을 그 일기를 통해 느끼게 되었다.

 

 참고로 윤치호에 대해서 알 수 있는 윤씨집안 가계도를 첨부한다(그 젊은 시절의 영향력을 그대로 이어나가 근대사에서도 다양한 흔적을 남긴다. 그 시절에 그렇게 많은 외국어를 하고, 외국에서 공부한 이는 아마 손으로 꼽았지 않았을까.30대의 그의 여행일기를 보면 전세계를 방문한 그의 깊은 감상과 묘사가 수려하게 펼쳐진다.지금 이 시대에도 그렇게 전세계 다른 곳과 비교하면서 써내려갈 수 있는 이가 적지 않을까.)

윤치호 가계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