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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사진 그대로 다시 찍기 - 해태상 2/2

작동미학 2020. 7. 24. 00:36

 이번에는 해치상 자체에 대해 확인해보자. 해치상은 과거 그 자리에서 현대에는 광화문 바로 옆으로 옮겨졌다. 아까의 사진 촬영지에서 광화문 쪽으로 길을 건너와 이 해치상을 역시 화각과 구도에 맞추어 찍어보자.

2020.04.18 12시, 45mm F5.6, 광화문 옆 담장 앞으로 옮겨진 해치상, 맨 첫사진과 가급적 동일한 높이에 구도로 찍었다.

 현대의 해치상은 지대가 조금 높은 곳에 배치되었는데, 사다리 없이 그냥 서서 찍어도 과거 사진과 각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 특이하다. 과거에도 해치상은 조금 튀어 올라와있었거나, 사진사가 서서 찍은게 아니라 삼각대를 통해서 조금 낮게 내려다보는 모양새로 찍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혹은 둘 다일 수 있다.

 

 여하튼 주의깊게 과거와 유사하게 찍은 두 사진의 해태상을 확대해서 비교해보면 반가운 것이 돌사이의 이음새도 맞고, 돌 여기저기에 같은 곳이 검거나, 동일하게 파손된 부분을 볼 수 있다. 또 하나 바닥을 살펴보면, 과거에 이 해치상이 좀더 위로 솟아져 나와 있었다는 점을 알 수가 있다. 밑에 주춧돌 같은 역할의 돌판이 있는 점이 쉽게 보인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은 과거의 파손은 현대에도 나타나야 한다는 점이다. 혹은 복원의 흔적이 있어야 한다.

 

빨간색은 과거 흔적이 이어져 나타난 부분이고, 노란색은 과거대비 오히려 복구가 된 이상한 부분이다

 앞서 밝혔듯이 인간의 눈으로 사진을 비교해보면 사진의 잡음같은 부위가 현재와 겹쳐지면서 실제인지 아닌지 더 잘 이해가 된다는 점을 처음 확인했다. 몇가지 변화에 대한 가정이 필요하지만, 앞서 과거 사진의 해상도가 올라가는 효과를 보여준다.

 

 사진상에서의 잡음이나 얼룩 같아 보이는 부분이 실제 현대의 고해상도 사진에서도 재확인되면 확실하게 당시의 흔적임을 알 수 있게 된다. 이런 것들이 같은 돌에서 여러개 관측되면 그것이 잡음이 아니라는 사실을 곧바로 알 수 있다. 여러가지 흔적이 잡음 형태로 중복발견될 확률이 낮기 때문이다. PC같은 수단을 통해 상기 사진의 과거 작은 흠결이 현대에도 보이는지 확인해보면(빨간색 동그라미) 이 경향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특히 돌같은 경우는 테두리의 작은 파손들을 유심히 관찰해보자.

 

 이때, 흥미로운 점은 사진속 해치상 중간 큰 돌의 하단부 작은 파손(노란색 동그라미)이 현대의 해치상에서는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까이 가서 보아도 복원의 흔적도 없다. 따라서 혹시 이 돌이 뒤집어져있는가 자세히 보았으나 종합해본 가설은 이 중간 돌이 다른 해치상의 것과 바뀐 것이라는 설명이다. 해당 돌 층의 가운데 선을 중심으로 좌우 돌 모두 다른 해치상과 바뀌었을 수 있으나, 다른 사진에서 확인해본결과 반만 옮겨졌다. 실제 다른쪽 해치상의 현재 모습에 동일한 자리에 동일한 파손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파손이 사실 사진만으로는 매우 작아서 지속 비교 작업을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바뀐것 치고는 둘의 색이나 분위기가 상당히 일관성이 있어서 처음에는 놀랬다. 즉 매우 오래전에 이 돌이 바뀐것이다.

반대쪽 해치상의 돌에서 유사한 파손 흔적을 찾았다. 작지만 두 경향이 같이 보임을 알 수 있다.

 

 해치상 2개(참고로 이 두 해치상은 암수 한쌍이다)는 모두 일제 강점기에 각기 번갈아 치워졌다가(1920년대) 조선총독부 건물 앞으로 옮겨졌다가 방치된 후 다시 광화문 앞에 배치된 것이 언론을 통해 추적할 수 있는 이야기이다. 아래가 이를 다뤘던 조선일보 기사에 대한 소개이다. 이 과정에서 과거에 뒤바뀌었을 수 있다. 그것이 일제강점기였는지 그 이후였는지는 당시 사진이 없어 모호하다. 조선총독부 앞에 해치상을 일정수준 이상 가까이 촬영된 사진이 발견된다면 판독할 수 있겠으나 불행히도 다양한 검색에도 불구하고 찾지 못했다. (나중에 확인한 사실은 1990년 즈음 광화문 복원 전의 해치상과의 비교에서도 현재의 이 돌이 이렇게 뒤바뀐 상태로 180도 회전하여 배치된 것을 발견했다. 과거 옮기는 과정에서 몇번 바뀌었으리라 추정된다. 다만 돌의 반쪽씩 서로 바뀐것은 역시 꽤 오래전이라고 본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804111701001

 

[여적]광화문 해치의 제자리찾기

“오백년 옛 대궐 경복궁 앞에 말없이 쭈그리고 앉아있는 해태(해치)를 보았으리라… 무슨 죄 있어 다리를 ...

news.khan.co.kr

 다만, 위의 비교 작업에서 이 해치상이 어지러운 역사속에서도 유실되었다 복원된 것은 아님을 유추해볼 수 있다. 해치상의 목주변 일부 무늬가 약간 바뀐게 아닌가 싶기도 의심했지만, 전체적인 상황에서 볼때 과거 사진의 품질 문제로 보인다. 비늘로 알려진 해치상의 몸의 동그란 무늬들도 예전과 현재가 완전히 같았다.

 

 다른 시절의 해치상 사진(일제강점기)과도 비교해보자. 앞서 살펴본 맥락이 유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서로 다른 과거 사진속에서 현재의 사진과 동일한 경향이 발견되면 이것은 완전히 해당 사실을 확정해준다고 볼 수 있다.

 이번에는 건너편에 위치한 해치상을 다시 찍어 비교해보자.

또 다른 해치상. 사람 눈의 느낌은 정밀해서 한참 들여다보면 과거 변화와 일치가 느껴진다

 이 비교 사진도 1900년대 초반이다. 과거 해치상 사진에서 아직 뒤로 의정부 건물이 보인다(왼쪽 구석에는 광화문이다.) 현재의 찍은 사진과 이 옛 사진을 앞뒤로 반복해보면, 역시 해치상의 모든 무늬가 거의 완벽하게 일치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단, 맨 바닥 하단의 동그란 노란색 표기한 기반석은 확실히 교체되었고(과거와 달리 갈라진 위치가 전체를 둘로 가르는 가운데가 아니다. 가만히 보면 한쪽으로 치우쳐있다), 해치상의 왼발에는 잘린듯한 자국이 있다(이 절단은 꽤 오래전부터 기록이 있다). 결국 양쪽 2개 해치상 대부분의 단상석은 원래의 것과 같다고 해도 무방하겠다. 그러나 앞서 지적한 가운데 돌 하나가 서로 바뀌었고 맨 하단석은 아예 교체되었다.

 

 의정부 건물 쪽 해치상의 경우는 다른 각도의 일제강점기 사진도 남아있다.

해치상 정면 상 비교사진(일제 강점기), 하단 기반석이 누군가에의해 보수한 흔적이 반갑다

 위 정면 사진(의정부 건물이 보이지 않고, 의문의 건물 지붕이 해치상 왼쪽편에 보이는 일제 강점기 사진이다)도 현재 사진 속의, 과거 돌의 부서진 부분을 보수한 흔적이 나타난다. 이는 오히려 해당 층이 그때 그대로임을 나타내줘서 반가웠다. 몇개 기반석의 모서리는 그 이후로 추가로 훼손되어 깨진 것을 볼 수 있다 (다만 저 노란 색 부위는 화각차이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다른 일치 흔적으로 볼때 변경된 것은 아니라고 판단된다) 이 사진의 바로 앞의 일제강점기 사진과도 비교해보면 기반석의 곳곳 모서리가 이 시기에 깨졌고 해치상이 더 많이 땅이 묻혀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당시에도 뭔가 변화를 겪을 수도 있었겠다. 일제강점기 해치상 사진이 1923년 이 자리에서 해치상이 사라지기 바로 전 즈음의 것임을 알고 보면 이렇게 과거 사진간 비교도 재미있다.

 

 궁궐 권역임을 알리는(그래서 여기서부터 궁궐안에서는 말을 탈 수 없다는 표지) 역할로서 승정원일기나 고종실록에 기록되어(1870년) 있다는 이 해치상은 그나마 위와 같이 일부만 교체된체 조선시대 그대로임을 거의 확정해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두개의 해치상의 변형은 아래와 같이 정리되었다.

해치상의 변형을 정리해보았다.

 가까이에서 보면 생각보다 더, 옮겨질때 바뀌어지고 파손된 부분은 꽤 된다. 윗 사진에서도 곳곳에 파손이 보인다. 신문기사 속 우여곡절과 함께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살아온 해치상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이렇게 돌까지 바뀌어서 꽤 오랜시간이 지나 아예 색까지 비슷해져버린 상태로, 여러가지 파손의 흔적과 함께 존재하는 해치상의 모습은 어찌보면 구한말 이후 기구한 한반도의 역사를 그대로 닮지 않았나 싶었다. 기사속에서 묘사되듯, 거적대기 속에서의 아슬아슬한 방치 속에서도 그래도 어디 사라지지 않고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 목에 달린 방울의 귀여움과 더불어 얼마나 기특하게 느껴지는지 모른다. 실제 가까이 보면 이미 여러군데 상처 투성이인 모습은 우리 민족의 과거를 보는것 같아 가슴이 찡해진다.

 

 이제 해치상의 위치를 조금더 따져보자. 아래는 현재의 또다른 쪽 해치상 위치 대비 과거 해치상의 위치를 가늠해볼 수 있는 사진 비교이다. 현대 사진의 오른쪽 검은 영역이 해치상 위치라고 표기된 표식이다. 이 오른쪽 해치상의 표시 위치는 원래와 크게 다르지는 않다.

 

 

 그리고 이 사진의 원천은 특이한 사진에서 발췌된 것인데 흥미로워서 여기에 따로 게시하여 둔다. 입체사진이다. 매직아이라는 예전 3D 사진을 보는 방식에 익숙한 분이라면 당시의 입체를 조금은 느낄 수 있다. 아예 이것도 장비를 갖추면 그대로 다시 찍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잠깐 고민해봤다. (그리고 이 사진의 매력은 의외로 해치상의 다리 가운데 있는 월대를 입체 그대로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당시 두개 렌즈로 특수 촬영한 사진

 이제 해치상은 마무리를 하고 다음편에서는 광화문에 좀더 집중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