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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및주변

옛 사진 그대로 다시 찍기 - 광화문 2/2

작동미학 2020. 7. 24. 00:37

 별도 협조없이는 재현해서 찍기 어려운, 광화문에서 내려다본 육조거리 사진도 보자. 해치상 두 개 빼고는 탁 트인 광장으로, 언덕으로 둘러 쌓여있으며, 지금의 모습과는 사뭇 다를 것이다. 공명정대함의 상징이라는 해치가 정부건물들이 가득한 거리에, 궁궐의 입구에 자리잡고 있는 모습이 개인적으로는 인상적이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역시 재현해서 찍을 수 있기를 바란다. 아마도 해치상 위치가 정확히 표시된 바닥 표식이 필요할테지만 말이다. 멀리 산이 아마 현대의 빌딩들 때문에 안보여서 기준점 찾기가 어려울 것이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따라 찍어보고 싶은 사진이다. 광화문으로 올라가야한다.

 조선 총독부 건물이 세워진 시기의 광화문 사진도 한번 비교해보자. 총독부 건물 건축 중(건축을 위한 뼈대가 아직 여럿 보인다)이며, 아직 광화문 철거 전 사진이다. 월대의 실제 방향을 가까이서 가늠해볼 수 있는 사진이기도 하다. 광화문 주위 궁장이 현재가 조금더 높다는 사실도 재확인할 수 있다(왼쪽편 뒷 인왕산의 노출 정도도 과거가 더 많다). 광화문 석축기단의 측면 아래를 잘 살펴보면, 월대주변의 지반이 지금보다 과거가 훨씬 낮게 조성되어 있음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월대 복원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 나오는것 같은데, 이렇게 그대로 복원이 가능할지 모르겠다.

과거 촬영위치가 지금보다 낮은 지반에서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

과거 조선시대의 광화문의 측면 사진도 존재한다. 삼군부(왼쪽 하단) 건물의 끝자락이 사진의 왼쪽에 보인다. 이 사진도 거의 1900년이나 그 이전일 수 있다. 전봇대도 보이지 않고 광화문 문앞의 작은 집도 보인다(일제시대에 가면 이 작은 초소(?)가 보이지 않는다)

1902년경 광화문 측면 사진과 비교, 안산 능선과 석축기단 상단을 정렬

 위 측면 사진은 또 하나의 소중한 사진으로, 과거대비 광화문 석축기단의 상단 라인을 기준으로 맞추어 찍었으며, 그 덕에 뒷 안산 능선과 비교해 광화문의 높이나 방향 차이를 가늠해볼 수 있다. 이를 통해 보면 석축기단이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은 높이와 각도로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알 수 있다. 다양하게 자리를 옮기며 찍어 실험해본 결과 저 정도면 십여 cm의 오차 내에 있다. 광화문 석축기단의 현재 위치와 높이, 방향이 과거와 거의 일치한다! 이는 향후 재현찍기를 할때 이 석축기단과 다른 산 능선을 맞추면 정확하게 비교할 수 있다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광화문 관련 거의 모든 사진들이 대략 50mm 화각에 광화문 석축기단 상단 라인에 정렬하고 촬영위치를 최대한 낮게 하면, 크게 다르지 않게 합성하여 차이를 알 수 있다(촬영 후 집에서 편집하는 과정에서 깨달았다)  조금더 사진을 비교해보면 당시의 광화문 입구 지반 높이가 역시 지금보다 상당히(거의 50cm 넘게) 낮았다는 사실과, 역시 그간 밝혀온, 궁장이 현대가 약간 더 높다는 사실 등 다양한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역시 이 사진에서도 광화문 석축기단을 복원하는 고증에 감명깊었다(언제인가 일제시대 철거전에 당시 엔지니어가 자세한 기록을 남겨서 이를 기반해 복원했다고 한다. 고마운 기록이다). 담의 측면 선이나 벽돌의 이음새까지 역시 유사하다. 이어서 뻗어진 궁장의 아래위 구성도 비슷하다. 그리고 오히려 현대의 광화문이 더 잘 보수되어서 궁장과 석축기단이 만나는 점이 더 직선으로 곧게 깔끔하게 복원되었다는 점도 보인다(과거에는 궁장이 다소 기울어있다). 군데군데 훼손된 문루도 지금은 훨씬 상태가 좋으며, 처마는 약간 더 휘어서 멋지게 솟아 올라있다. 더 번영한 후손들이 훨씬 더 잘 만들었다고 볼 수도 있다. 본래 중건한 당시의 엔지니어가, 지금의 광화문을 본다면 더 멋지게 건축된 이 광화문에 감탄할 수도 있겠다. 광화문은 그 시절보다 훨씬 번듯해졌다. 그래서 또 한번 대한민국의 현재를 이야기해준다. 1900년대 통탄의 역사를 거치면서도 나라는 이 광화문처럼 다시 우뚝서게 되었다. 전보다 훨씬 더 나은 모습으로 말이다. 이 이야기는 다른 글에서 풀어보자. (https://jongnowalk.tistory.com/16)

 

복원시 해태의 위치도 가늠해볼 수 있다

 위 사진은 또 다른 사진인데, 왼쪽 해치상의 위치를 역시 유사하게 특정할 수 있다. 다만 이 사진에서 해소가 안되는 것은 산의 능선중 일부(우측 중앙부)가 맞지 않는다는 점이다. 도로 위가 촬영 장소이니만큼 좀더 안정된 상태에서 정확하게 촬영하여 비교했으면 하는 아쉬운 사진이다. 촬영 시야에 따라서 어떤 것들은 살짝만 벗어나도 위치 차이가 클 때가 있다(특히 바라보는 중앙 시야에서 벗어나있는 것들이 그렇다. 최대한 정밀하게 맞춰야 오차가 적을 때를 종종 발견한다)

 

 아래 사진에서도 현재 도로에 위치한 해치상의 모습을 알 수 있다. 사진을 번갈아 보면 이 추론에 거의 문제가 없다는 점을 느낄 수 있다. 

처마의 변형과 궁궐담의 높이 예측도 같다. 아래는 또다른 사진에 대한 비교이다.

 월대의 위치나 방향 및 의정부터 건물의 위치도 더 정확히 가늠해볼 수 있다. 그리고 지금은 잘려진 광화문 뒤의 큰 나무들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상태로 보아 경복궁 복원 이전부터 자라온 나무들임을 알 수 있다. 아마도 조선 총독부 건물 신축시에 잘리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조금더 합성 비교된 사진들의 나무의 높이를 사진마다 정확히 구해 추론해보면, 각 사진들의 연대를 더 특정할 수 있어 보인다. 그리고 아래의 과거 사진과 윗 과거 사진 비교도 흥미로운데, 둘다 광화문 오른쪽 문이 열려있고(!) 뒤에 하얀 세모의 무언가 건축물 일부가 보인다. 아래 사진과는 의정부 건물의 유무가 다른 긴 시간차이를 갖는데도 같은 흔적이 존재한다. 의정부 건물이 철거되기 전부터 긴 시간동안 있는 궁궐내 특이한 물체가 있었다 (자세히보면 흥례문의 좌우측 연장선은 아니다)

오른쪽 해치상 뒤에 작은 건물이 있고 전봇대가 꽤 많은 일제강점기 사진이다. 광화문 뒤로 조선총독부 건물 짓기 중으로 보인다.

 두 해치상의 위치를 다시금 가늠해볼 수 있는 다른 비교사진이다. 사진 오른쪽의 해치상이 철거(1923년, 조선부업품공진회 개최 직전, 이당시 서십자각도 철거되었다)되기 전 일제 강점기 시대이다(이미 오른쪽에 다른 사진에서 보이는 길고 낮았던 의정부는 철거된 상태임). 광화문 뒤쪽을 자세히 보면 무언가 나무로 된 건축 뼈대같은 것이 다수 관측된다. 조선총독부 건물 공사는 1916년~1926년으로 알려져있는데, 대략 1916년~1917년 전후가 아닐까 싶다. 광화문 뒤쪽도 앞서의 사진과 달리 무언가 설치되어 있거나 흥례문 양옆의 흔적도 애매하다. 앞서 밝힌 대로 광화문 오른쪽 열린 문으로 보이는 뒤 하얀색 건물 같은 것이 꽤 오랫동안 존재하고 있다는 것도 이 사진들로 알 수 있었다.

 

 조금 더 멀리서 본 사진을 하나 더 비교해보자. 

 

 위 사진도 나름 중요한 의의가 있는데, 뒤쪽 근정전이나 경회루, 북한산 자락까지 모두 맞추면 매우 정확하게 과거 건물 높이 추정이 가능한 또다른 사진이다. 근정전의 상단 지붕과 북악산 능선, 광화문의 석축기단 상단을 정렬하면, 육조거리의 의정부 위치 등이 정확히 가려질 수 있겠다. 북악산 지형의 세부 변화도 또한 알아낼 수 있다. 조금더 위치를 조율해 찍어 비교해볼 필요가 있는 사진이다. 좀더 오른쪽으로 뒤로 후진하여 찍었어야 했다. 추후 개선하려고 한다. (궁내 건물 중에 근정전, 경회루, 향원정 정도가 중건이후 그 본래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이제 동십자각으로 이동해볼텐데 이동 전에 광화문 측면을 다시 한번 더 살펴 보자.

 

 여러가지를 감안해 보더라도, 광화문에서의 궁궐담의 시작은 과거가 더 낮았지만, 다시 높아진다. 그리고 다른 사진에서도 중복확인되지만 이 궁장의 방향은 과거와 거의 일치한다. 동십자각까지의 궁장이 끊기면서 단절되기 전까지는 과거의 방향이다. (나중에 추가로 확인된 동십자각 사진을 참조하면 된다) 지형 높낮이들은 앞서의 설명과 유사하다.

 

 다음으로는 경복궁의 건물로는 드물게도 그때 그대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래서 더 소중한 동십자각으로 이동해보자. (경복궁 관련해서 현재까지 그나마 일부라도 제 자리에서 모습을 보존하는 건물이나 문은 앞서 밝힌 근정전, 경회루, 향원정과 더불어 이 동십자각, 건춘문 정도이다. 목재 건물의 경우는 보존 한계를 염두해두더라도, 너무 적게 남아있다는 사실에는 아쉬움이 많다. 석재로 건축되었으나 사라진 서십자각이나 영추문은 더 아쉽고 서글프게 느껴진다. 모두 일제 강점기에 개발에 밀려 손쉽게 망가지고 철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