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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및주변

옛 사진 그대로 다시 찍기 - 광화문 1/2

작동미학 2020. 7. 24. 00:36

 해치상에서 나와 멀리 좀더 뒤로 가서 광화문을 조망해보자. 아래는 해치상 2개가 모두 나타난 사진이다. 보면 1910년 이전 사진으로 추정되는데, 육조거리의 사진상 좌우측에 각각 삼군부(三軍府)나 의정부(議政府) 건물(각각 사진의 좌우측 긴 건물)이 유지되고 있는 것이 이를 가늠케 해준다. 의정부는 1910년 일제 강점기 이후 곧 철거되었다. 그래서 사진 속의 시기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 비교 대상이 된다.

1904년 촬영 사진, 북악산/북한산 능선과 겹쳐 현대사진과 비교, 광화문 석축기단에 맞추었다

 두 사진을 한참을 바라보면, 역시 과거 사진이 더 낮은 위치의 시야에서 찍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촬영 앞뒤 거리 차이에 의한 오류 가능성을 감안해보더라도 과거의 광화문이 좀더 누워보인다. 좌측 해치상의 위치는 역시 도로 위쪽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사실은 현대의 이 촬영 위치에서 거의 바닥에 엎드려도 과거처럼 이렇게 촬영각이 나오지 않는데(너무 엎드리면 바닥이 올라와서 사진의 느낌이 더 이질적이어 보이는 문제다 있다), 과거의 이 촬영위치 지반이 상당히 더 낮았음을 알 수 있었다.

 

 별도로 지금과는 달리 산에 나무가 적은 것이나 북악산의 큰 바위들이 사진에 서로 비슷하게 잡힌 점도 알 수 있다. 현대 사진과 비교해볼때 멀리 북한산(북악산 뒤쪽)도 선명하게 보이는 것을 봐서는 맑고 청명한 날이었으리라 짐작할 수도 있다. 현대의 사진도 날씨가 상당히 좋을때 촬영된 것이고 다소 흐리면 북한산이 보이지 않는다.

 

유사한 시기 다른 사진도 확인해보자. 이제 광화문에 조금더 집중해서 봐주면 좋다. 앞서 지적했던 현상들을 재확인 할 수 있다.

좀더 낮은 각도로 촬영했으면 좋겠으나 그러면 도로가 너무 올라오게 찍혔을것이다. 계속 보면 과거 사진의 땅이 푹 커지게 느껴진다

 이 사진비교는 광화문 왼쪽 열린문을 통한 바로 뒤 흥례문 주변의 모습도 하나의 포인트이다.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게 유사하다. 흥례문도 사실은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1996년) 이후 복원되었는데, 복원시에 땅을 1.5m 밑으로 파고 근정전의 높이에 맞게 지었다고 한다. 그 결과로 과거 사진의 처마 높이와 현대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른 사진에서도 열린 문의 뒷편 흥례문 주변은 거의 정확이 일치한다. (이런 비교가 가능해서 광화문 옛 사진은 문이 열린 사진의 가치가 더 크다. 안을 제대로 찍은 사진이 없는 점도 있다.)

 

 이번에는 광화문 자체의 변형을 추적하기 위해, 광화문 뒷편의 사진을 한번 비교해 보았다.

광화문 양 옆문 바깥라인이 굽은, 다른 사진에는 없는 왜곡이 보이는 사진이다. 감안해서 확인이 필요하다

 아쉽게도 이 사진은 비교할 산의 능선이 없는데, 광화문 하단 석축기단 부분으로 정렬해보면, 문루의 처마가 약간 다르다. 구체적으로는 현재의 광화문은, 과거에 비해 문루 하단 처마가 조금 더 길고 올라갔으며, 상단의 처마의 뿔과 뿔 사이가 짧은 간격을 지닌다. 문루 상단은 그리고 현대가 약간 납작해진 느낌이다. 그리고 궁장은 현대가 약간 더 높다. 앞서의 예측들과 같다.

 

 위 사진에서는 석축기단을 기준하면 궁궐담(궁장)은 약 30cm정도(사람들의 무릎길이를 통해 유추해보면) 현재가 더 높다. 과거 사진속 지면 높이가 약간 의아한데, 광화문 정면 사진에서는 현대가 더 지대가 높아졌는데, 아래 사진은 현대의 지대가 더 낮다. 자라난 풀이 가리고 있음을 고려하더라도 즉 궐내 지반의 높이가 바깥보다 일정 수준 이상 높았음을 알 수 있다. 이 경향은 나중에 살펴볼 동시자각의 궐내 사진에서도 조금은 보인다. 혹은, 일제 강점기를 보내고 나서 조선총독부 건물 건축과 철거가 어떤 영향을 끼쳤을 수 있겠다.

 

 여기서 또한 재미있는 것이 경복궁 내부임에도 풀이 무성했다는 것인데, 경복궁은 1870년대 중건된 이후로도 화재로 비우고 아관파천 이후에 역시 1900년 전후 사용되지 않은 기간이 많은데, 이 시간동안 왕이 거주되지 않은채 최소한의 관리만 했다는 추측이 전해진다. 한마디로 방치되다 싶은 시기를 여럿 거쳤다는 이야기다.

 

 앞서 유추된 과거와 오늘날의 광화문 변형은, 정면 사진을 하나 더 비교해보면 더 확신할 수 있다.

 

 이 사진은 광화문을 근접해서 찍었다는 점에서 가치가 크다. (당시에 문이 열려서 찍었더라면 흥례문도 비교해볼 수 있었을텐데 말이다!) 과거 사진의 촬영 위치가 지금보다 낮았다는 것도 다시한번 알 수 있다. 위 비교 사진도 과거의 광화문이 조금더 뒤로 누워있는 느낌이다. 그리고 광화문 하단을 보면, 특히 월대 주변으로 과거의 지반이 조금더 낮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사진을 한참 관찰해보면, 신기하게도 복원된 광화문의 석축기단 부분 돌 이음새가 거의 일치(나중에 살펴볼 측면을 포함 거의 모든 면이 마찬가지로 일치한다)한다는 것도 인상적이다. 양옆의 궁장 위쪽 처마 길이의 비율은 조금 다르지만 석축기단은 돌 하나하나 일치되게 복원되었다. 거의 돌을 그대로 가져다쓴것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로 과거 모습 그대로를 보는 것 같다. 현재의 광화문 복원에 얼마나 신경을 썼는지 알 수 있었다.

 

 현판을 보면, 과거 광화문 현판이 검은색임이 좀 의아한데, 검색을 해보면 과거의 광화문 현판이 검은 배경에 금박으로 씌였다고 한다(검은 배경의 글씨는 화재를 막기위한 어떤 조치로 보는 설이 있다). 기사에서는 곧 복원 예정이라고 한다.

 

또다른 정면 사진을 비교해보자. 1900년 이전 사진으로 추정된다. 광화문 바로 옆 궁장 높이 차이를 볼 수 있다. 과거 사진이 하나같이 문이 닫혀있는 것은 역시 아쉽다.

 

 좀더 멀리서 조망한 사진을 보면 역시 같은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간 진술한 내용이 대부분 일치한다

 위 비교 사진에서도 현재의 광화문의 문루 상단 맨 위 선이 조금더 낮고 문루 상단 두 뿔의 폭이 더 좁으며, 좌우 궁장은 약간 높고 광장쪽 지반은 과거보다 전체적으로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왼쪽 구석 조금 남은 해치상의 끝 부분이 현재의 도로변에 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그리고 과거 사진의 열린 광화문(이 사진에서는 문이 열려있다!)의 뒤로 조금 보여서 비교 가능한 복원된 흥례문 주변의 장면들이 과거와 현재가 거의 일치함을 다시 알 수 있다. 역시 광화문 석축기단과 흥례문의 복원 완성도는 상당하다. 특히 사진의 광화문 왼쪽 문 뒤의 장면은 거의 같은 점이 놀랍다.

 

(복원 광화문의 과거 비교는 아래 링크에서도 확인된다. www.hani.co.kr/arti/PRINT/102888.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