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산책

행촌동, 오래된 은행나무와 딜쿠사 본문

종로 동네 산책

행촌동, 오래된 은행나무와 딜쿠사

작동미학 2020. 5. 12. 02:34

행촌동이 행촌동으로 불리는 이유는 이 오래된 은행나무 때문이다. 450년이 넘은 나무이며, 권율장군의 집터로도 알려져있다.

2019.11.03 행촌동 은행나무, 아래에서 촬영

 

2019.11.03 행촌동 은행나무, 멀리서 본것, 사직터널을 나와 독립문 주변을 다닐때도 보일 정도로 크다
2019.01.27 행촌동 은행나무, 450년이상된 나무이다.

그리고 이 은행나무 옆에 누가 지었는지도 모르는 붉은색 옛 벽돌 건물이 있었는데, 2006년에 와서야 이 건물이 앨버트 테일러 부부가 세운 딜쿠샤(1923년 완공) 라는 것이 알려졌다.

 

 앨버트 테일러 부부는 1920년 전후해서 서울 성곽 순례시 이 커다란 은행나무를 발견하고 마음을 빼았겼다고 전해진다. 계속 이 은행나무에 올라가 서울을 내려다보다가, 이 땅이 매물로 나왔을때 구매한 후 집을 지은 것이다. 당시 조선에서 제일 큰 개인 벽돌 저택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문화재로 지정되어 복원중인 이 딜쿠샤는 아니러니 하게도 건축 초기 인근 마을 사람들의 반발을 샀다. 신령시되고 옛부터 성황당 기도처 역할을 하던 큰 은행나무에 집을 짓는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신령한 땅에 몹쓸 짓을 한다고 여겼던 것이다. 그래서 테일러 부부는 일본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집을 지어야 했다. 이 건물은 1923년 완공된다.

 

 테일러 부부는 이 집을 '딜쿠샤'라고 지어있는데, 이는 힌두어로 '기쁜 마음의 궁전', '이상향'이라는 이름으로 인도 러크나우 지역에 있는 궁전의 이름을 땄다. 테일러 부부는 집의 대리석 주춧돌에 DILKUSHA 1923이라고 새겨넣었다.

 

 그리고 여기에 1942년까지 살다가 일제의 외국인 추방령으로 더이상 거주하지 않게 되었고, 이후 소유권이 모호하다가 무주택 서민들이 쪽방으로 나눠 사는 공간이 되었다. 그러다가 현재는 한국자산관리공사에 관리권이 넘어간 상태라고 한다. 그렇게 '귀신 나오는 집'으로도 불릴 정도로 방치되기도 했던 이 집은 2006년 테일러 부부의 아들 브루스가 한국을 방문해 딜쿠샤의 역사를 이야기하고 관련 자료를 서울시에 기증하면서 부터 세상에 알려졌다. 그리고 지금은 기존 거주자들이 퇴거하고, 복원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이 딜쿠샤가 또한 유명해진 것은 바로 앨버트 와일러 테일러씨(Albert Wilder Talyor, 1875~1948, 양화진 서울외국인묘원에 안장)의 3.1운동 관련 보도 때문이다. 개인 사업을 하던 테일러씨는 미국 AP통신사 임시특파원으로 있었는데 3.1운동과 수원 제암리 학살사건(일본군 집단 학살 사건)을 알렸다. 3.1운동의 경우 1919년 2월 28일 테일러 부부의 아들 브루스 티켈 테일러가 세브란스 병원에서 출생했는데 이 세브란스 병원에서 독립선언서를 입수해 보도한 것이다.

1919년 3월 13일 뉴욕타임스 실린 3.1운동 기사, 경향신문 발췌

 

 이렇게 한국과 인연을 맺어서 긴 시간 살아가던 테일러씨는 1942년 추방령으로 추방되었다가도 계속 한국에 돌아오기를 원했는데, 1948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면서 남편의 유언에 의해 부인 메리 테일러가 그를 양화진외국인묘원에 안장하고 미국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이러한 역사는 부인 메리 린리 테일러가 집필한 자서전 '호박목걸이'이에 나와있다.

http://www.newsa.co.kr/news/articleView.html?idxno=195483

 

3.1운동 세계에 알린 '앨버트 테일러와 딜쿠샤' 유물 최초 공개 - 뉴스에이

[뉴스에이=어흥선 기자] 1919년 3.1운동과 수원 제암리 학살사건을 취재, 당시 조선에 대한 일본의 무단통치 실상과 우리 민족의 평화적...

www.newsa.co.kr

이 호박목걸이 책을 읽은 본인의 감상은 다른 블로그 글에 게시한다. ( jongnowalk.tistory.com/21 )

 

 

 아래는 작년에 딜쿠샤를 방문해 복원중인 광경을 찍은 것이다. 찾아가기도 쉽지 않은 곳에 위치해있고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다보면 딜쿠샤를 만날 수 있다. 

2019.01.17 딜쿠샤, 은행나무 바로옆의 빨간 벽돌 집이며 현재는 임시 확장된 설치물을 떼어내고 보수 중이다.

상기 사진과 아래 사진을 비교해보면 증축된 흔적이 다수 보인다. '귀신 나오는 집'으로 불렸다가 무주택 서민 주거 공간으로 한동안 활용되다가 지금에 이르렀다고 한 역사 그대를 말해준다.

과거 딜쿠샤의 모습, 오마이뉴스 발췌

아래는 복원공사 후 모습이다.

2021.04.04 딜쿠샤, 복원 공사 후의 모습
2021.04.04. 왼쪽 하단의 정초석 확대

 

2021.04.04 딜쿠샤, 복원 공사 후, 은행나무와 함께 담긴 모습

아래는 앞서 언급된 기증된 사료들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낯선 그 시절의 모습들을 알려준다.

 

1926년 은행나무와 딜쿠샤(1923년 완공)
연도미상, 딜쿠샤와 은행나무, 지금은 건물이 가득한 그곳에 딜쿠샤 말고는 거의 아무것도 없던 시절
1929년, 딜쿠샤 (서울역사박물관 발췌)

아래 사진들은 딜쿠샤의 주변을 더 이해할 수 있는 사진이다. 독립문에서 인왕산을 바라보며 찍은 사진을 시작으로 성곽을 따라 딜쿠샤까지 내려가보자.

1900년 전후 추정, 독립문 뒤쪽 무악동, 오른쪽 성곽을 따라 내려가면 딜쿠샤가 있는 은행나무가 나오겠다.
1900년 전후 추정, 독립문 뒤쪽 무악동과 행촌동, 아래 사진과 비교해보자.
1920년대, 딜쿠샤가 보이는 사진
딜쿠샤 확대 사진, 성곽아래 자리잡았고 오른쪽에 은행나무가 보인다

복원 전의 딜쿠샤의 다른 각도 사진을 몇장 더 실어보자. 복원 후의 사진도 추가한다.

 

2019.01.27 딜쿠샤, 복원중
2019.01.27 딜쿠샤, 복원중인 뒷쪽 광경
2019.01.27 딜쿠샤, 복원중인 건물 정면

복원 후의 모습이다.

2021.04.04 딜쿠샤 복원 후, 1층 거실, 사진속과 거의 같게 복원되었다.
2021.04.04 딜쿠샤 복원 후, 끝 방에서 딜쿠샤 거실쪽 정문을 바라본 모습
2021.04.04 딜쿠샤 복원 후, 끝 방에서 은행나무 쪽을 바라본 모습

 

2021.04.04, 딜쿠샤 복원 후 2층 테라스쪽
2021.04.04, 딜쿠샤 복원 후 2층에서 은행나무쪽 전경, 제일 좋은 방이었을것 같다.
2021.04.04, 딜쿠샤 복원 후 거실 시계, 정말 작동한다.
2021.04.04, 딜쿠샤, 메리 테일러의 자서전에 나오는 호박 목걸이/귀걸이다.
2021.04.04 딜쿠샤 복원 후 내부 전시 사진, 집을 돌보던 김주사 등 메리 테일러가 그린 그림이다.

아래는 딜쿠샤와 호박목걸이 전시회(서울역사발문관)에서 찍은 위 은행나무에 대한 이야기이다.

테일러씨가 들었던 은행나무에 대한 이야기가 고스란히 적혀있다.

2019.01.27 딜쿠샤 전시회에서 찍은 은행나무에 대한 기록

 향후 행촌동의 상징이 되리라 생각된다. 우리에게는 너무 소중한 문화재가 아닐 수 없다. 그때 그 시절 테일러 부부의 인생을 더듬어보는 시간 속에 한국의 근현대사를 그대로 다시 만날 수 있다. 이런 문화재가 동네에 이렇게 자리잡고 있었다니, 놀라운 일이다.  은행나무가 흐드러지게 노란 가을에는 딜쿠샤를 방문하여 테일러 부부의 과거를 더듬어보면 좋을것 같다. 

 

'종로 동네 산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독도서관 '23년 4월  (0) 2023.04.08
계동/북촌 한옥 마을 관광로 - '23년 4월 및 기타  (0) 2023.04.08
흥선대원군 별서, 석파정  (0) 2020.05.03
서촌 풍경 #1  (0) 2020.05.03
수성동 계곡  (0) 2020.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