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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청국 대표, 젊은 무관 출신 원세개 이야기

작동미학 2022. 10. 17. 23:22

원세개에 대한 책이 두어권 존재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책에 더 인간적이었고, 자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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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세개

원세개-중국 최고의 황제는 최고의 기회주의자이자 군사 전문가이며 또한 우리나라에 화교를 퍼트린 장본인이기도 한 원세개의 정치 역정을 통해 중국 근현대사 100년의 역사를 되짚어 보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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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세개는 1880년대 이홍장(이홍장은 청국의 외교를 좌지우지한 또한명의 거물이다)이 조선에 대한 영향력을 늘리려고 할때 조선으로 보낸 젊은 20대 관료 중의 한명이었다. 청국의 과거시험에 두번을 낙방했다가 이홍장의 부하였던 당숙 원보령을 통해 천거되어 임오군란 시기 조선에 가게 된 인물이다. 그런데 원세개는 처세에 능하고 과감하게 행동하며 자신의 이익을 잘 챙겼다.

 

 가장 돋보였던 것은 갑신정변에 대한 처리였다. 당시 갑신정변을 진압하기 위해서는 일본군과의 충돌이 불가피했는데, 이런 결정에 대해 상사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단독으로 자신이 훈련시킨 군대를 투입시켜 진압한 것인데, 후일 이를 가지고 이홍장으로부터 유능하다는 인상을 주게 된다. 이 사건 외에도 나이 어린 그가 군대를 통솔하고 기민하게 대처하는 일이 잦자 아예 이홍장은 원세개에 조선을 맡겨버리고 그 스스로 총독역할을 하게 된다.

 

 훗날 원세개는 청일전쟁 직전에 청국으로 도망치듯 돌아갔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이홍장을 이어 북양대신에 임명되고 결국에는 1916년 중화민국의 황제가 된다. 그가 이 과정에서 보여준 다양한 자신의 이익을 절대적으로 중시하는 처세가 여러가지 비난을 일으키기도 했다(중국 개화세력을 지지하다가 돌연 불리해보이자 서태후로 바꾸어 밀고하고 보수쪽으로 전향하는 등) 이런 인물이 조선에서 성장했던 것이다.

 

 원세개와 얽힌 여러가지 일화가 책에 소개되는데 첫번째는 이홍장이 임명한 조선의 두번째 외국인 고문인 O.N. 데니와의 불화이다. 데니는 원세개가 조선의 종주국 대표로서 하는 여러가지 행동과 관습을 싫어해서 노골적으로 비난을 했다. 고종이 그러했듯 원세개를 교체하려고 여러가지 이홍장에게 건의를 하기도 했다. 그가 하는 여러가지 강압적인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민비의 생일에 앉는 자리를 둘러싸고 서로 분쟁한 이야기 등이 책에 거론된다.

 

 두번째는 고종 폐위 음모이다. 고종과 민비가 지속 청의 영향력을 벗어나기 위해 러시아와 접촉하는 등 행동을 취하자, 대원군을 설득해 고종을 폐위시키고 왕을 세우려는 계획을 세우다가, 요청한 파병이 실패하면서 미수에 그치게 된다. 군사 500명만 있으면 새로운 왕을 세울 수 있다고 청국 황실에 건의하였다가 허풍쟁이 인물로 낙인찍히기도 했다는 일화가 등장한다. 신중한 이홍장은 주변국과 마찰을 일으킬 수 있는 이런 행동에는 반대했다(당시 특히 러시아). 

 

 세번째는 한러밀약 사건이다. 러시아에 조선의 땅을 대여하는 등의 협의서를 민영익을 통해 확보한 원세개는 이를 빌미로 고종을 압박한다. 결국에는 조선과 러시아가 그 문건의 존재를 부인하면서 일단락되었으나 조선내의 여러가 관리들과 관계를 맺고, 어떤 증거를 확보하며 이를 통해 다양한 전략을 구사하던 원세개의 처세를 알 수 있다.

 

 이외에도 원세개는 이홍장과 지속 협의하면서 조선의 차관을 청을 통해서만 진행하도록 하여 경제적으로 의존하게 한다던가, 여러가지 통상에서 청국이 유리하도록 전개하는 등 다양하게 청국에 유리하도록 내정간섭을 진행한다. 1894년 청일전쟁 직전에 병을 핑계삼아, 지속 귀국을 반대하던 이홍장의 허가를 얻어내어 귀국하게 된다. 조선내의 다양한 인물과 교류하면서 청국의 대표로서 여러가지 권력을 휘둘렀던 인물로써 1880년대와 조선에 대한 청나라를 대표하는 인물로 이홍장과 함께 알아두면 그 시대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