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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 초대 러시아 공사 배버의 조선 (초대 조선 러시아 공사 베베르)

작동미학 2023. 1. 17. 00:02

22년 12월 초대 러시아 공사 베베르에 대한 신간이 국내에 출시되었다. 반가운 마음에 바로 구매해서 읽어보았다.

http://www.yes24.com/Product/Goods/116253085

 

배버의 조선 - YES24

러시아 외교관 배버의 눈에 비친 조선의 모습사진과 해설로 다시 보는 한 세기 전의 한국카를 폰 배버(Carl von Waeber, 1841-1910)의 방대한 가족사가 『초대 러시아 공사 배버의 조선』으로 출간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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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서 소개했던 벨라 보리소브라 박의 "러시아 외교관 베베르와 조선"에 이은 베베르에 대한 두번째 한국어 책인 셈이다. 주로 사진을 설명하는 형태로 베베르의 가족사가 같이 전개된다. 독일인인 필자는 베베르의 독일어식 이름인 칼 본 베버(Carl von Waeber)로 표기하는게 특이하다. 그 덕에 인터넷 서적 사이트에서 베베르로 검색해도 이 신간이 나오지 않는 것은 좀 아쉽다.

 

소개하고 싶은 내용이 많지만 간단하게 몇가지만 살펴보자.

 

첫번째, 이 책은 앞서 출간된 "러시아 외교관 베베르와 조선"에 언급된 몇가지 오류를 지적한다. 책의 표지 사진이 베베르가 억지로 끼워넣어져 합성 조작된 것이라는 점(대체 왜 그 사진을 조작했을까!)과 청년 시절의 다른 베베르와 혼란스럽게 적혀있는 점, 기타 여러가지 잘못된 사진이 소개되는 점 등이다. 개인적으로는 특별히 책의 역사적 사실에 영향을 미칠만한 오류는 아니라고 보지만, 정정되어 알게된 점은 좋다.

 

두번째, 불행히도 베베르 공사의 가족사가 그리 순탄하지 않게 전개된다는 점이다. 발트 독일인인 그는(현대의 리투아니아 근방에 살던 독일인) 러시아에 편입되어 어찌보면 일종의 소수민족으로 살았었나 보다(처가는 명문가였고 본인 집안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지만). 유럽의 다양한 역사를 자세히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나중에 베베르 퇴임 후 가족들은 세계대전의 소용돌이 속에 추방되다시피 프랑스와 독일로 이주하여 살게된다. 이후 첫째 아들은 결혼하지 않았고, 둘째가 재혼한 부인으로 부터 얻은 딸, 즉 이 베베르의 손녀가 마지막 후손으고 그녀가 사망함(2021년)으로 인해 더이상 후손이 없게 되었다.  그리고 이 마지막 후손인 니트벨트 폰 베버(독일식 이름) 여사가 베베르의 유품을 보관하다가 저자에게 기증하면서 이 책을 통해 공개된 셈이다.

 

세번째, 베베르에 대한 여러가지 사진 기록이 흥미롭다. 역사속 사진들은 의외로 잘못 소개되는 경우가 많다. 다양한 나이대의 사진을 다루고 출처가 혼란스럽다 보니 많이들 실수하는 셈이다. 그러나 이 신간에는 다양한 고증을 거친 베베르의 진짜 사진들이 다수 나온다. 그리고 이 사진들을 통해 필자가 이전에 공유했던 베베르의 사진들이 불행히도 잘못되었다는 것도 알았다. 이 신간의 사진들을 통해 베베르와 그 가족들의 다양한 나이대별 진짜 모습을 알게되었다.

 

네번째, 베베르에 대한 여러가지 추가 지식들이다. 베베르는 구한말 주요 인사들과 다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구한말 조선 관료로 근무했던 독일인 묄렌도르프를 비롯하여 선교사 알렌이나 그 당시의 여러 외교관 및 여행자들은 물론이고 조선의 여러 인물, 예컨데 민영환과도 친분이 있었다고 한다. 또한 고종으로부터의 베베르에 대한 평가는 아관파천때 의지하던 이후로 분명해졌다. 베베르는 이미 어찌보면 친조선파로 을미사변이 발생했던 1895년에 러시아 외무부에서 더이상 조선문제에 직접 간섭하지 말라며 소환되었을 정도로 친조선적인 행동을 줄곧 해왔다.(그런데 이 러시아 외무부 지시에도 불구하고 을미사변으로 베베르의 재직기간이 늘어났다) 물론 이러한 다양한 행동들의 근원에는 러시아에 대한 애국심에서 시작 되었겠지만, 러시아 외무부가 줄곧 일본 정부의 눈치를 보면 자극하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하며 가급적 물러서있으라고 훈령하는 동안에도, 베베르는 그러지 않았다. 

 

또한 베베르 부인인 유제니(독일식)는 그 시기 조선 외교관 사이에서 사려깊고 접대를 잘하는 러시아 공사 부인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모두가 그녀의 대접을 기억하며 베베르의 인덕을 같이 칭찬한다. 베베르가 조선의 외국인들의 중심역할을 한데는 그녀가 많은 기여를 한 것으로 보인다. 외교관 뿐만 아니라 선교사나 여행객들 모두 베베르의 초대를 받고 환대를 받았다.

(호머 헐버트 선생이나 유명한 선교사나 외교관은 모두 베베르 가족과 소풍을 가거나 집에 초대를 받고 관계를 맺었다. 알렌과도 마찬가지다. 묄렌도르프도 형제와도 같은 독일인으로써 친분을 갖은 일화들이 나온다.)

 

다섯번째, 손탁에 대한 내용이다. 마리 앙투와네트 손탁(독일식 발음)은 베베르 처형의 자매이다. 처음에는 베베르 공사의 아들 보모로 부인 유제니를 따라 조선에 왔었는데(1885년에 조선에 베베르가 가족과 함께 들어온다. 그에게는 1875년생 1879년생 두 아들이 있었다. 그당시에는 가족이 조선에 이렇게 들어온 꽤 빠른 경우에 속했는데 다른 선교사나 외교관들에 비해 훨씬 미리 가족 주거를 경험했을테다.) 1895년 아관파천때 손탁이 러시아 공사에 피신한 고종을 보좌하는 역할을 수행하면서 왕의 눈에 띄었다. 이후 고종이 환궁하고 대한제국을 선포한 후 손탁은 외국인임에도 불구하고 조선황실의 접대나 이벤트를 담당하는 황실전례관으로 봉직되어 수년간 근무하게 된다. 그리고 1905년에 잠시 해외여행을 한 후(책에서는 고종의 메세지를 열강에 보내는 역할을 한다고 했다) 1909년에서야 조선을 떠나 프랑스로 이주한다. 베베르가 1902년 즈음 고증 즉위 40주년을 기념해 조선을 한번더 방문했으니 아마도 이 시기에도 손탁과 재회했을테고 1910년 베베르가 사망할때까지 조선과의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는 현지 연락처가 되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손탁이 프랑스 칸에 마련한 저택에 베베르 부인 유제니가 베베르 사후에 주거했던 기록도 보여준다.

 

 

이렇게 보면 베베르의 가족들은 베베르 및 부인 유제니와 손탁까지 모두 조선황실과 큰 친분을 가지고 생활했었을테다. 손탁의 묘지에도 조선황실 황실전례관이라는 직함이 적혀있다고 한다. 베베르가 러시아로 돌아가 생을 살았던 저택의 이름이 빌라 코리아인점도 이 가족의 조선에 대한 기억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또하나 책에는 아관파천당시 베베르가 고종의 요청으로 러시아 외무부에 허락을 받고 거의 1년간 고종을 공사관에 보호한 내용이 등장한다. 당시에도 전례 없던 일이었고 러시아 외교부도 당황했을 일이다. 그럼에도 베베르는 이 중재와 리스크를 모두 감당하고 처리했고 고종을 보필한다. 당시 격무에 시달렸다는 기록이 같이 등장한다.

 

 

또한 베베르가 러시아로 돌아간 시점(1897년)에서도, 독일의 조선공사가 베베르에게 헌정한 사진(1903년)도 등장한다. 줄곧 조선은 베베르와 접촉하면서 여러가지 상의를 했었을 수 있겠다.

 

이 책만으로 베베르의 이야기를 이해하는데는 한계가 있을 수 있겠으나(오히려 책 러시아 외교관 베베르와 조선이 더 많은 베베르의 기록을 담고 있다) 사진이나 여러가지 유품 및 저자의 베베르에 대한 고증이 고마운 책이다.

 

책을 읽으면 어떤 과정을 거쳐  베베르의 가족들이 조선 구한말 외교사의 중심에 있게 되었는지 알 수 있다. 아무리 봐도 구한말의 특별한 이야기를 간직한 외국인 가족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