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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위치에 따른 과거 미래, 책 "격동의 동아시아를 겪다"

작동미학 2022. 9. 4. 11:33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에는 각 나라의 위치가 얼마나 역사에서 중요한지에 대해 나온다. 그리고 구한말의 역사를 보다보면 한반도의 운명에 대해 여러가지 지리적인 관점의 인사이트도 얻을 수 있다.

 

필자에게 그 계기가 된 책이 바로 독일의 유명한 외교관 막스 폰 브란트의 "격동의 동아시아를 겪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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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동아시아를 걷다 - YES24

타자의 시선에 비친 우리의 모습은 무엇인지를 되물어 보고자 하는 `그들이 본 우리` 총서의 네 번째 권으로, 19세기 말 중국, 일본, 조선을 둘러싼 서구 열강의 힘의 외교와 정치적 역학관계,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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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만을 다룬 책은 아니지만, 조선에 대한 이야기를 할때 그는 여러가지 통찰을 이야기해준다. 바로 임진왜란과 청일전쟁이 닮았다는 이야기다. 왜 그럴까? 그것은 이 지도를 통해 간단히 설명할 수 있다

 

한반도 주변 지도, 위키피디아 발췌

 16세기말 임진왜란은 일본을 막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이제 관심을 외부로 돌리면서 명나라를 치겠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되었다. 곧바로 조선에는 명을 치도록 협조하라고 이야기하는데, 조선 정부는 오랑캐 정도로 여기는 일본의 말이 터무니없다고 거절하게 된다. 그리고 이에 일본은 내전으로 다져진 군대를 곧바로 조선에 투입시킨다. 그리고 이 전쟁에서 조선은 초기에 속수무책으로 밀리게 된다. 즉, 조선은 전쟁에 대한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나마 책에서 묘사한대로 조선 수군의 선전과 의병 투쟁으로 이 전쟁이 초기에 지연되지 않았더라면, 어떤 일이 생겼을까.

 

 전쟁 초기에 매우 빠르게 평양까지 점령한 왜군과 명나라의 협상은 대동강 정도까지 일본의 점령을 인정하는 안이 거론되었다고 한다. 처음에 일본의 기세를 무시하던 명나라는 크게 당할뻔 한 셈이고, 조선은 그 전쟁의 피해를 그대로 얻어 맞은 셈이다. 그러나 이후 여러가지 대내외 투쟁의 결과로 결국 일본군은 막대한 피해를 입고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하자 모두 철수했다. (이후 일본은 동과 서로 나뉘에 다시 한번 내전에 돌입해 결국 동쪽을 대표한 도쿠카와 이에야스의 승리를 통해 에도 막부 시대가 열리게 된다. 부산과 가까웠던 서측 지역의 세력은 임진왜란으로 약화된 것이다)

 

 이를 각 국가 들과 그 위치의 관점에서 설명해보면 강대국 사이에 낀 한반도의 운명을 이야기해준다. 중국과 일본은 당시에 우리나라를 거치지 않고는 서로를 침입하기가 어려웠다. 바닷길을 보면, 일본은 중국 입장에서 바라보았을때 제주도를 넘어야만 갈 수 있는 곳이다. 더구나 볼록한 중국의 입장에서는 일본은 바다로 가기 쉽지 않은 곳이었다. 몽골도 일본을 침입하고 싶을때 별다른 다른 길 없이 부산을 통해서 가야만 했던 것도 결국 이런 지리적인 상황을 잘 이야기해준다.

 

 중국본토의 세력이 팽창했을 때도 일본에 잘 침입하지 않은 이유는, 조선마저도 중국 본토 입장에서는 변방이었기 때문이다. 조선과 중국의 왕조는 조공관계임에도 불구하고 대체적으로 조선의 독립은 존중받았다. 필자가 보기에 만약에 지리적으로 조선이 중국의 상하이 정도와 바로 가까운 직통의 육지 길이 있었더라면(만주로 길게 우회하지 않고) 상황은 훨씬 달랐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중국에게 일본은 너무나 먼 나라였고, 크게 관심갖지 않았던 셈이 된다.

 

 임진왜란 시기는 일본의 국력이 팽창하면서 대담하게 조선과 명나라를 넘본 일본의 확장 정책이 있던 때였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그 길목에 있던 조선에 쏟아졌다. 막스 폰 브란트는 미국인 그리피스의 말을 인용해 이 임진왜란의 피해에서 조선이 극복하기까지 200년정도가 걸렸다고 평가하고 있다. 수많은 사람이 죽었고, 도시들은 파괴되었으며 많은 이들이 또한 인질로 일본에 잡혀갔다.

 

 그러면 다시 돌아와 1894년에 벌어진 청일 전쟁은 어떠했는가? 마찬가지 일이 발생했다. 성격도 비슷했다. 조선이라는 이권을 둘러싸고 청/일 간에 충돌하였으며 조선반도에서의 양국간에 전쟁이 벌어지고, 청나라가 이번에는 패배했다. 동일한 패권 경쟁에서 일본이 승리한 셈이다. 그래서 임진왜란과 청일전쟁은 둘다 조선땅에서 벌어진 중국과 일본의 패권다툼으로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청일전쟁 당시에도 보잘것 없었던 조선의 군사력은 당시 양 강대국의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조선의 군사력은 오히려 임진왜란때보다 존재감이 적었다. 메이지유신을 통해 근대 산업의 혁신을 일궈나가던 일본(1860~1890)은 이미 서양열강에는 비하기 어렵더라도, 청나라와 전쟁을 벌일 정도로 체계를 잡은 상태가 된 것이다. 물론 당시 일본이 청나라를 이긴 것은 여러나라에 의외로 비친 점이 있긴 했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막스 폰 브란트는 청일전쟁의 해전에서 역시 임진왜란처럼 일본이 패했다면, 청일전쟁에서 일본의 패배로 이어졌을 거라고 평가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일본은 다양한 청일전쟁 기록에서 나타나듯이 매우 과감하게 청의 해군을 공격했고 승리했다.

 

 여하튼 강대국과의 위치 관점에서 한반도의 위치 특성은 그 주변 강국의 힘의 팽창에 따라 각 국의 영향권에 하에 들어가거나 전쟁터가 되는 일을 반복할 수 있는 특성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구한말에는 일본의 팽창에 따라 한일 강제 병합이 이루어지고, 이후에 태평양 전쟁을 거쳐 일본의 영향력이 급감하고 대신 러시아와 미국의 패권 다툼이 한반도에서 다시 벌어지면서 결과적으로는 양 세력에 의해 한반도 분단을 맞게 된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렇게 한반도를 이 세력간의 이해관계와 지리상의 충돌로 보면 이러한 전개 과정이 특이하다고 볼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지금은 어떠한가? 일본의 국력은 다소 지지부진한 상태이나 중국의 영향력이 더 강대해지고 있다. 러시아는 예전같이 않지만 군사 강국의 모습을 보여주며 중국과 연합하고 있다. 어찌보면 과거에 비해 한반도 북쪽의 세력은 더 강해지고 있는 모양이다.

 다만 멀리 미국은 패권국으로 일본과는 연합해있는 상태인 모양이다. 그리고 중국과 러시아, 일본과 미국의 패권다툼은 더 심해질 양상이다. 그 패권 다툼이 한반도에 다시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가? 그리고 어느 한쪽의 융성이 이 한반도를 또 어떻게 쥐고 흔들것인가?

 

 다만, 조선의 국력입장에서보면 예전과는 다른 양상인 것은 그나마 다행이 아닌가. 군사력이나 경제적 영향력 관점에서 과거 구한말 조선의 상황보다는 훨씬 나은 것은 반갑기 그지 없는 일이다. 전처럼 한반도의 경제력과 군사력은 아무런 고려사항도 없이 강대국들이 대리전을 전개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게 되었다. 한반도의 존재감도 예전보다는 훨씬 커졌다.

 

 자, 그러면 지금 이시기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지리적인 위치에서 각 강대국의 팽창 압력은 향후 지속될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의 힘이 커지면 그 지배력을 넓히고 싶게 되고 어찌보면 지금은 그 압력이 커지는 시기이다. 그리고 경제력인 관점에서는 존재감이 미미하더라도, 이 두 강국을 일부 대리하는 북한에 의해 여러가지 사건사고가 예상될 수 있다. 아마도 그것은 남한의 입장에서는 방어의 메카니즘에서 이해되지 않을까. 그러나 남북한을 대리전의 장소로 제공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두 거대 강대국 연합의 싸움에서도 한반도는 그 자체의 정체성을 지키는 노력 만이 또다른 대리전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아닌가.

 

 1895년 을미사변은, 당시의 국제 정세를 기민하게 읽고 일본을 견제하며 러시아를 선택하는 명성황후에 대한 일본의 보복으로 볼 수 있었다(이는 미우라 고로의 기록에서, 을미사변 직전 일본의 유력자이자 전임 조선일본공사 이노우에 카오루의 명성황후에 대한 평가에서 빌려온 말이다) 당시 조선 황실은 청나라와 일본, 러시아, 미국 등 열강 사이에 줄다리기를 통해 조선을 유지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황실의 고민은 21세기 다시 반복될 수 있다. 그 시대의 여러가지 선택들이 반복될 수 있다. 과연 이 격변기에 상황은 어찌 전개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