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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쿠샤, 책 호박목걸이

작동미학 2020. 5. 14. 01:39

책 "호박 목걸이(Chain of Amber)"는 딜쿠샤 안주인 메리 테일러(Mary Linley Taylor)의 자서전이다.

 

 사실 이 책은 온전한 역사 서적이라고 보기도 어렵고, 딱히 한국인의 입장에서 쓴 책도 아닌 작가 메리 테일러의 시점에서 기술한 1900년대의 일제시대 조선에 대한 이야기다. 그래서 마냥 좋은 책이라고 추천할 수는 없지만, 당대의 제대로 개화되지 않은 조선이라는 나라에 온 미국인 사업가 부부의 관점에서 당시의 조선의 모습을 알 수 있는 점이 이 책의 매력이다. 더군다나 읽기 좋게 문학적으로 서술되어 있어서, 부담없이 볼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처음 다 읽고 나서는 유명한 영화 "Out Of Africa"가 생각났다. 식민지 사업을 하러온 서양 남녀의 로맨스를 다룬 이 영화에서 우리가 자각하지 못했던 것은 바로 그 영화에서 조선이 해당 식민지의 자국민들이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 당시 조선의 상황은 이 아프리카와 같다는 점을 단박에 알 수 있다. 우리는 서양인에게는 마냥 낯선 동양인이며, 이 땅에는 여러가지 폭력이 난무하며, 배우지 못하고 미개한 하인이기도 하고, 그래도 이 미개한 이들 가운데서 간간히 보이는 지식인도 있지만, 역시 괴이한 생활 습관으로 대표되기도 하는 그런 상황이다.

 

 그러나 시종일관 반가운 것은 테일러 부인의 인왕산과 행촌동 은행나무에 대한 사랑이다. 서울 성곽길 경치와 금강산 등에 대한 부인의 동경은, 아직 가보지 못한 금강산 외에 다른 주변 지역에 대한 감정들은 현대의 나와 같다. 특히나 딜쿠샤와 돈의문 주변에서 결혼 후 줄곧 거주한 메리 부인은, 종로에서 성곽길 근처에 사는 사람들의 조선시대의 삶에 대해 이것저것 이야기해준다.

 

 "그리고 곧 한국이 진정한 등산가들의 천국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느날 브루스와 나는 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성벽을 따라서 한 바퀴 돌기로 했다. 성벽의 길이는 직선거리로는 20킬로미터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직선으로 걸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구불구불한 성벽을 따라가자면 갔던 길을 되돌아 다시 가야 ... 브루스(남편 브루스 테일러)는 지치지도 않고 북악산 최정상에 있는 쌀바위로 나를 이끌고 갔다. .. 발 아래로 보이는 기막히게 아름다운 서울의 전경에 반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먼 길을 힘들게 되짚어가려면 기운을 차려야 했기 때문이다.

 옛 성벽을 따라 내려가다가 키가 30미터나 되어 보이는 거대한 나무 옆을 지나가게 되었다. 나로서는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신기한 나무였다. 커다란 밑동은 지름이 120센티미터 정도에 껍질은 반질반질하고 회색을 띠었다. ... 나는 '우리 나무'라고 부를거예요. 정말로 이 나무를 갖고 싶어요. 게다가 여기는 집을 짓기에 딱 좋은 곳이네요!..

 

 그 후 몇 달 동안 나는 수시로 그 은행나무가 있는 곳까지 걸어가 나무 아래 앉아서 안개에 싸인 서울을 내려다보며 몽상에 잠겼다. 나의 나무는 무악재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받아 잎들을 살랑거리며 시원한 산들바람을 내게 선물로 보내주었다" - p.153~155, 책 호박 목걸이, 메리 테일러 

 

1917년경 부유한 영국 집안 출신의 메리 테일러는 여배우로 해외 공연을 다니다가 인도에서 브루스 테일러(미국인 금광 사업자, 2대째 가업인)를 만나 결혼하게 되면서부터 한국에서 사업을 하는 남편과 함께 1941년경까지 행촌동의 딜쿠샤 및 그 근방에서 살아간다. 여러가지 어려움을 겪기도 하지만 사업가로 당시에 서울에서 가장 큰 개인 벽돌집이라는 딜쿠샤를 짓고 살면서 조선의 이곳저곳과 중국 및 해외를 여행하는 부부의 삶을 그리고 있다(1,2차 세계대전 시기, 주로 조선이라는 환경하에서 자녀를 낳고 키우며 살았다). 조선을 사업기반으로 삼았던 브루스 테일러는 2차 대전의 미일간 전쟁으로 강제 추방당하지만, 결국은 죽어서도 유언에 의해 한국에 와서 묻히게 되고 1948년 해방직후에까지 한국을 방문하면서 이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그 와중에 한국에 많이 알려진 것은 브루스 테일러가 사업을 하면서도 미국 AP 통신 특파원을 겸했는데 3.1운동이나 제암리 학살 사건 등 역사적인 사건을 미국의 워싱턴포스트를 통해 잘 알려준 점이다. 1919년 2월 말경 자녀를 출산한 세브란스 병원에서 입수한 독립선언서를 미국으로 보내 보도한 사건 등이 인상깊다. 이런 내용은 앞서 딜쿠샤를 다룬 블로그 길에도 일부 소개했다.

https://jongnowalk.tistory.com/17

 

행촌동, 오래된 은행나무와 딜쿠사

행촌동이 행촌동으로 불리는 이유는 이 오래된 은행나무 때문이다. 450년이 넘은 나무이며, 권율장군의 집터로도 알려져있다. 그리고 이 은행나무 옆에 누가 지었는지도 모르는 붉은색 옛 벽돌 �

jongnowalk.tistory.com

 

 이외에 행촌동 생활 중 몇가지 재미있는 일화들을 소개해본다.

 

 행촌동 은행나무를 좋아했던 매리 테일러 부인의 부탁으로 행촌동 주변 땅을 사들인 브루스 테일러씨가 집을 지을때, 이 오래된 은행나무에 대한 동네 사람들이 반대했다. 마침 그 집의 집사 노릇을 하던 김주사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한일 강제 병합 이전에 조선의 관리(주사 관직을 지냈으나 일제로 부터 관직 제안을 거절하고 서양인 밑에서 일한 것이다. 미국의 조선 사절단으로 참여해 영어도 익히게 되는 그야말로 그 시대의 엘리트 였던것 같다)였다. 그래서 거기 있던 몇개의 우물이나 은행 나무의 마을 사람 접근 등을 잘 허용하도록 그나마 가이드를 해서 작업을 진척시킬 수 있던것 같다. 김주사도 내심 그곳에 집을 짓는 것을 반대한것으로 나온다. 건축을 위해 자재를 무악재를 통해서 날랐는데 마을사람들이나 무속인의 방해로 결국에는 경찰의 보호까지 받으며 집을 지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무속인은 저주를 내렸고 그래서 벼락을 맞아 그 집이 불탔을 때까지 부부도 잠시 이러한 신성한 곳에 대한 저주의 영향을 받지 않나 걱정하는 장면이 보인다(p.275~p.285)

 

"곧 은행나무가 있는 신령한 땅 근처에 외국인이 집을 짓는다는 소문이 널리 퍼졌다. 김 주사가 우려한 대로 마을 사람들은 우리가 신령한 땅에 무엄한 짓을 저지르고 있다며 분개했다. 우리가 언덕 위에 집을 지으면 그들은 더 이상 까치샘과 은행나무에 갈 수 없게 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대대로 누려온 권리를 지키겠다는 뜻을 표현하기 위해 수레를 뒤엎고 건축 자재들을 내던졌다...

 .. 브루스(메리 테일러 부인의 남편)는 촌장을 만나러 갔다. 그는 한국 사람들의 심리에 대한 이해와 유창한 한구어 실력에 과단성 있는 성격까지 동원해 마을 사람들의 시위를 잠재우려고 애썼다. 무당이 나타나 저주의 말을 쏟아내고, 자신들의 근거지를 빼앗아 노하게 된 외국인들에게 재응을 내려달라고 모든 신령에게 빌고 나서야 군중은 흩어졌다. 지신님이 복수할 것이다. 너희는 말라죽을 것이다. 집안에 악운이 내리고 화마가 집을 삼킬 것이다! 무당은 째질 듯한 목소리로 신경질적으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뱀 같은 손가락으로 저주의 손짓을 해보였다...", p.276~277, 책 호박 목걸이, 메리 테일러

 

딜쿠샤 사진, 사진 속 인물이 책 속에 묘사된 김 주사 일지도 모르겠다. 저 멀리는 인왕사 근처는 아닐지..

 여하튼 테일러 부부는 바락맞아 화재가 난 이후에도 다시 지어서 역시 1942년 조선을 떠날때까지 그곳에서 살게된다. 인도의 궁전의 이름을 따라 지은 이 집에 대한 메리 테일러 부인의 애정은 책 곳곳에 나온다.

 

 "진입로에서 까치샘(은행나무 근처)으로 가는 굽이를 돌면서 나는 웅장한 은행나무를 올려다보았다. 마치 수백만 년 동안 내리쬔 햇빛이 한데 모여 거대한 황금빛 꽃다발을 만들고, 땅속에 있는 보이지 않는 어떤 손이 그 꽃다발의 굵은 줄기를 쥐고 있는 것 같았다. 머리 위로 기러기 떼가 븡 자 모양으로 줄을 지어 끼루룩거리며 무악재 너머로 날아갔다. ..."

 - p.324, 책 호박 목걸이, 메리 테일러

 

딜쿠샤 당시 전경, 성곽쪽에서 안산방향을 보고 찍은 사진이다. (지금의 딜쿠샤는 저렇게 단독으로 있지 않고 건물에 가득 싸여있다)

 

 

딜쿠샤 당시 내부 사진, 출처 서울시 기증 자료

 

또한 신기한 사건이 있었는데, 은행나무가 한번은 가지가 부러져 떨어진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은행나무의 안에 엽전이 박혀있다는 내용이다. 오래전에 은행나무에 사람들이 돈을 가져다 놨고, 까치가 은행나무위에 올려놓은게 점점 박혀있다는 설명을 한다(p.294). 해당 은행나무는 단순히 오래된 은행나무가 아니라 조선시대 동안 줄곧 주변 마을 사람들의 성물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은행나무는 다산의 상징으로 주로 아들을 낳게 해달라고 빌었다는 설명도 김주사에게 듣는다. 

 김주사가 가져온 1600년경 문건에도 그곳이 "은행나무골"로 불렸고 이를 기반으로 그때도 크고 신령한 나무였다고 예측하는 장면도 나온다. (p.272) 책에서의 수령 예측은 600년이었는데, 지금의 은행나무앞 팻말을 보면 350년이 된 시점이었겠다.

 그리고 해당 책에는 이 주변에 까치샘, 수사슴샘, 뱀샘이 있다는 말이 나온다. 집 뒷편에 소나무가 있었고 그 아래에 땅을 파다가 발견된 바위에 무언가 조각이 새겨져있었다는 기록도 있다.(p.292) 지금 이 집의 주변에는 건물이 가득차 있어서 그 바위는 어디로 갔는지 혹은 치워졌는지 모르겠다. 아쉬움이 남는다. 

 

 마지막으로 메리 부인이 만났던 한국사람들에 대한 기록인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영어를 유창하게 하면서 관직을 지냈다는 김주사이다. 테일러 부부의 골동품 가게를 관리하기도 했던 김주사는 메리 부인에게 개화파가 추구하는 독립이나 일제에 대한 원망 등을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메리 부인은 그런 그가 일본 경찰에 붙잡힐까봐 노심초사 걱정하면서도 존중하는 장면이 나온다.(p.308~311, p.432~p.440)

 

주로 딜쿠샤에서 일했던 한국인들을 메리 부인이 그린 그림(왼쪽 맨 하단이 김주사), 서울시 자료

책은 1948년 한참 서울에 난민들이 밀려들어 불안한 모습을(p.449~454) 끝으로 남편 브루스를 양화진 선교사 묘원에 안장하고 떠나는 메리 부인의 이야기로 끝맺는다. 정말로 조선의 격랑의 역사와 함께하지 않았나 싶다. 책을 읽는 내내 종로 연관 이야기나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오면, 내가 있는 이곳에서 백년 전으로 거슬러간 느낌이었다. 딜쿠샤가 가까이 있는 분들에게라면 한번쯤 읽어보기를 권장하고 싶다. 과연 100년전의 여기 모습은 어떠했고 한국인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서울시 사진 출처 : http://mediahub.seoul.go.kr/archives/1053158

 

3.1운동 유적 ‘딜쿠샤’ 자료 서울에 오다

서울역사박물관은 1919년 3·1운동을 세계에 알린 미국 AP통신 특파원 앨버트 테일러(Abert W. Talyor)의 손녀 제니퍼 테일러(Jennifer L. Taylor)로부터 ‘딜쿠샤’ 관련 자료 451점을 기증받았다고 밝혔다.

mediahub.seoul.go.kr

서울 역사 박물관의 딜쿠샤 호박 목걸이 온라인 전시회 : 호박 목걸이를 볼 수 있다!

www.museum.seoul.kr/CHM_HOME/jsp/MM03/vr/105/index.html

 

www.cubicpan.com

 

museum.seoul.go.kr